멋진 여행

멋진 여행

 

기차가 달리고 있다.

차창으로 보이는 광경은 해가 뜨지 않은 날의 바다 같은 회색이다.

슬그머니 일어나 열차 몇 간 지나서 있는 식당차로 걸어간다.

문 앞에서 자동문이라 써 있는 것을 누르니 문이 스르르 열린다.

식당차 안에는 두 세 테이블 만 손님이 앉아있다.

하안 테이블 보가 깔려있는 한 테이블에 가서 앉는다.

하얀 테이블에는 간장 자국도 조금 배어 있고

테이블 보 가장자리의 박음질이 조금 뜯어져 있다. 

그래도 흰 테이블 위에는 꽃병이라는 것에

자잘한 노란 국화꽃 몇 개가 달려 있는 조그만 키의 국화가 꽂혀 있다.

하얀 테이블 보와 자잘한 노란 색과 차창 밖의 회색 빛이 잘 어울린다.

꽃병은 기차의 흔들림에 쓰러지지 않게 밑이 조금 넙적한 도자기 병이다.

자리에 앉자 키 큰 웨이터 한 사람이

하얀 와이셔쓰에 까만 나비 넥타이를 하고

까만 바지 위에 하얀 앞 치마를 발등까지 내려오게 입고는 다가온다.

주머니에서 조그만 수첩과 볼펜을 꺼내어 (몽당 연필이었으면 더 멋지겠는데)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은 긴장된 얼굴로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신중하게 주문을 받아 적는다.

 

음식이 나올 동안 턱을 괴고 눈은 밖으로 향한다.

조금 흐린 날씨여서인지 유리창에, 반대편의 조리장의 모습이 비친다.

그 사이 휙휙 지나가는 나의 시야에 들어 오는 풍광은

회색 빛 속에 강도 보이고 숲, 밭, 구름, 그리고

빨간 지붕의 사람 사는 집들도 드문드문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회색 빛 속의 강, 들, 빨간 지붕. 

그리고 기차와 같이 잠깐 따라가다 위로 사라지는 새 한 마리.

 

꼳꼳이 서서 서브하는 웨이터의 멋진 몸 놀림에 비해서

웨이터의 팔뚝 위에 얹혀 나온 기차 간의 음식은 언제나 그렇듯이 맛이 없다.

어느 정도냐 하면 10년 이상 지난 지금도

맛 없었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 할 수 있을 만큼 맛이 없다.

 

다시 기차의 내 자리로 돌아온다.

기차가 역 플랫 폼에 서서히 들어선다.

열차 안의 사람들은 졸거나 책을 읽거나 어떤 사람은 그저 우두커니 밖을 내다본다. 

기차가 역에 들어서니 나는 눈을 밖으로 돌려

천천히 지나가는 역의 광경을 무심히 쳐다본다. 

기차가 들어서는 수많은 정거장 중에 하나 일뿐인 역을 내다 본다. 

플랫 폼에 가지런히 놓인 꽃 배추 화분에 눈이 따라가다가

벽에 걸린 시계를 슬쩍 보고 시간을 보지만 곧 시간을 잊어 버린다. 

그리고 거리낌 없이 입에 손을 대고 하품을 한다.

기차가 서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 하자

점점 어두워져 희미해지는 밖의 풍경에 다시 기차 안으로 시선을 돌린다.

기차 안의 대각선으로 보이는 곳의 사람이 정신 없이 자며 떨구는 머리를 슬쩍 쳐다본다.

한참 지나 다시 눈을 들어 밖을 내다보니

온통 시커먼 어둠 속에 멀리 반짝반짝 빛이 보인다.

이 기차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기차가 서서히 위로 올라간다. 

나의 몸이 의자 등받이에 서서히 기대어진다.

은하 철도 999인가. 

가까이서 보이는 별빛들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기차가 구불텅구불텅 검은 청색 하늘을 날고 있다. 

반짝이는 것은 우주의 별들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한참을 올라가니 기차는 다시 환해진 구름 위를 달리고 있다.

르네 마그리뜨의 구름처럼 꼬냑 유리 잔에 구름을 뚝 따서 한 가득 담고 싶을 정도로

뭉개 구름이 솜사탕처럼 나의 시선 끝까지 펼쳐져 있다.

그 위에 앉으면 아주 편안하게 푹신하게 앉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승객 아무도 이 구름 위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젊었을 때 읽었던 헤르만 헷세의 작품에 나오는 구름에 대한 묘사에

얼마나 나는 매료 되었었던가.

오직 구름에 대해서만 삼 사십 페이지를 써 놓아서

그것을 마음 설레며 노트에 다시 쓰고 또 끊임없이 외었던 일이 생각 난다.

지금은 한 글자의 묘사도 생각 나지 않는다. 

구름이 물에서 피어 오르는 수증기 같듯이,

그리고 잠시 후면 스르르 없어 지듯이

그렇게 가슴 절절이 스며 들었던 헷세의 구름도

지나간 세월 속에 스르르 증발 해 없어져 버렸단 말인가.

그 때 그 책을 들고 밖에서 가슴 설레며 쳐다보던 구름이 지금의 구름이 아니 듯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구름도 조금 후면 지금의 구름이 아니겠지.

그러면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식사 하시겠습니까?

예쁜 스튜어데스가 나를 흔든다.

 

열흘 전 남편과 같이 한 여행에서 일반석인 우리의 비행기 좌석이

행운으로 또 다시 비지네스 석으로 옮겨졌다.

우연히 생긴 너무 편안한 여행으로 인해 잠깐 조는 사이

나는 그만 구름 위로 올라 와 버렸나 보다.

//
by 외할머니 | 2008/03/09 15:38 | 트랙백 | 덧글(0)
인삼차가 있는 풍경

인삼차가 있는 풍경


날씨가 춥던 겨울 어느 날,

영동에 있는 병원에 가기 위해서 지하철을 타고 병원 가까운 역에서 내렸다.

지하에서 올라와 한참을 길을 따라 걸어 올라 갔으나

예전에 있던, 타면 바로 병원 앞에 서는, 버스 정류장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할 수 없이 택시를 기다렸다.

그 때, 어떤 젊은 여자하나가 다가와 다짜고짜

여기 버스 정류장 어디 갔어요?  하고 나에게 묻는다.

어디 갔어요?에서 갔어요? 를 살짝 끝을 올리면

버스 정류장을 내가 치워 버린 것 같은, 아니면  

버스정류장이 혼자 걸어서 어디로 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의 심사가 조금 비뚤어진다.  그래서 꼭 해야 하는 예의가 필요 한가 보다.

저도 찾고 있는데,

혼자 걸어서 어디 갔나 봐요 하고 말하려다

없어 졌나 봐요. 그래서 저도 택시 타려고 해요

혹시 병원 가세요?하고 그녀가 묻는다.

.

저도 거기 가려는 데요

저 쪽에서 개인 택시 한 대가 달려 온다.  그러자 그 여자는 재빠른 소리로 나에게

잘 됐네요.  우리 같은 일행인 것처럼 타고 택시비는 반반씩 내요.한다.

젊은 여자가 끝까지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앞으로 타려고 하니까

일단 그 쪽이 택시비를 먼저 내세요.  내가 내려서 드릴 테니까요한다.

내가 앞에 타고 그녀가 뒤에 탔다.

속으로, 일행이 앞 뒤로 나누어 타는 수도 있나? 중얼거리면서

아저씨, 좀 가까워서 죄송 한데요, 저쪽에 있는 병원으로 가 주세요.

네에! 어서 오십 시요.

기사 아저씨가 밝게 대답한다. 기사 아저씨의 나이가 육십은 넘어 보인다.

차가 달리기 시작 했다. 

오전이라 그런지 가까운 거리 인데도 건널목 마다 차가 길게 늘어 서 있고

신호등 마다 자꾸 걸린다.

택시 안의 기사와 나 사이를 보니 거기에 마호병이 하나 눈에 보인다.

기사 아저씨는 차가 설 때 마다 그 마호병 뚜껑을 열어서 그 병에 입을 대고 마신다.

 

가끔 택시를 탈 때면

어쩐지 말을 안 트는 게 좋을 것 같은 인상의 기사를 만나거나

내 기분이 안 내키거나 혹은 생각 할 일이 있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가기도 하지만

인상 좋고 나이 지긋한 기사 아저씨를 만나면

서로 나누는 이야기가 아주 재미 있을 때가 많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나 단어 하나로 얘기를 끌어 낼 때도 있고

밖을 내다 보다가 보이는 사람들의 특기 할 만한 행동이 얘기 거리가 될 수도 있고

또 내가 자동차를 운전하며 갖게 되는 의문 점이라든가 등등,

여러 가지가 이야기의 꼬투리가 되어 이어져서

가끔 예상 외로 재미있는 얘기를 들을 때도 많다. 

아저씨들과의 이야기들이 비약 해서

그것이 아저씨들의 자식 자랑, 가족 얘기 등으로 이어지고

차 속에서 심심하고 말 상대가 없어서 인지

금방 헤어질 사람 인 줄 알면서도

기사 아저씨들은 많은 속내 얘기들을 꺼내 놓는다.

 

아저씨,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잡수세요?

그 맛있게 드시는 물이 무슨 물이지요? 커피 같진 않고……”

이거요?  하하

하고 또 한번 마신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으면서.

또 건널 목 정체다.

이거 따듯한 인삼차예요.

마호병에 인삼차 넣어주는 커피 집도 있나요?

매일 매일 내가 새벽에 일 나가면서 차를 타보면

으례 마누라가 맛있게 타 논 마호병이 벌써 내 옆자리에 놓여 있는 거예요.   

매일매일 다른 내용의 조그만 쪽지를 붙여서요.  하루를 잘 보내라는 뜻의.

일년 열두 달 메뉴를 바꿔 가며 이렇게 옆에 놓아 주지요.

오늘은 이렇게, 뜨겁지도 않고 먹기 좋은 온도로, 인삼차네요.

얘기가 재미 있어진다. 

아저씨가 내 나이쯤 되어 보이니 이런 농담은 괜찮겠지.

아저씨 결혼 하신지 얼마 안 되시나 보죠?  신혼이니까 안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예요?

결혼 한지 삼십 오 년 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사람이 한결같이 신경을 많이 써 드려요?

우문은 계속 된다.

그럼요. 기사 노릇도 오래 했지만 집 사람도 한결같이 합니다.

겨울에는 따듯한 거, 여름에는 시원 한거.

지금 열 시 다 돼 가니까 이제 조금 있으면 전화 올 겁니다.

하며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벌써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한결 같이?  전화까지도?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니 헨드폰 벨이 울린다.

첫 마디가 예사롭지가 않다.

. 당신도?

그 쪽에서 뭐라 했길래 당신도?했을까?

이때의 당신도가 의문형처럼 살짝 올라간다.

짧은 쪽지 글 이야기까지 자상한 안 사람의 배려를 내가 들은 후이니까 아마

새벽에 좀 추웠는데 오전 잘 보내셨어요? 하니까 당신도?라고 했을까? 혹은

아침은 든든하게 잘 드셨어요?하니까 당신도?라고 했을까?

그리고 이 아저씨는 존대 말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다.

저 쪽에선 지금 남편의 상황이 조금 궁금 한가 보다.

지금 여자 두 분 모시고 영동에 있는 병원 쪽으로 가는 중 이예요.

차가 많이 밀려 좀 늦네요.  하고 대답 한다.

이 사랑의 전화를 이 글로 다 쓰기가 힘들다.

전화 내용이 아저씨의 말만 일방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남편의 하루를 건강하고 밝게 웃으며 지낼 수 있도록 전화 저쪽의 여자는

전화로 다정하게 배려를 해주고 있고

또 이 아저씨는 자기 안사람이 항상 위험을 안고 있는

택시 기사의 처로서 가질 수 있는 염려를

이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안심시키고 있는 게 분명하다.

또 이 아저씨는 자기 안 사람에게 혼자 있다고 아무렇게나 밥 먹지 말고

제대로 잘 차려 놓고 먹으라는 자잘한 일상의 일까지 가만 가만히 챙겨 준다.

보통, 택시 손님도 있고 하니 일단 끊는 전화가 아니고

서로 배려하는 말들을 소름 돋지 않게 정말 자기의 사랑스런 안 사람이라는 듯

여기 건널목에서 정체 되어 있으니 괜찮아요.하면서

안사람이, 운전하면서 전화 함으로서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염려하는 것까지 안심 시킨다.

 

, 이럴 수도 있구나.  택시 기사의 안 사람의 힘이 이렇게 큰 것이구나.

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항상 위험을 안고 사는 이 기사 아저씨한테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일에 대한 짜증스러움이나 피곤함 같은 것들이

좀처럼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사랑이 듬뿍 담긴 안사람의 배려로

이 지옥 같은 서울을 운전하고 다니는 택시 기사의 하루 하루가

즐겁고 기분 좋으리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당신도.

하며 전화를 끝내는 기사 아저씨의 당신도의 말의 높이가

이번에는 똑같이 같은 톤 인 것으로 보아

이제는 나도 그 안 사람이 이 기사 아저씨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아저씨의 얼굴을 내릴 때 자세히 보니

아저씨의 주름진 얼굴이 무척 넉넉하고 선량해 보였고

그리고 무척 행복 해 보였다.

부부의 역할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젊은 부부의 똑 같은 상황이었으면 보통 있는 일로 그러려니 했었겠지만

나와 나이가 비슷한 부부의 것들 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더 한층 감동을 주었나 보다.

 

뒤에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나처럼 이 대화로 인해 오늘은 그 여자에게도 생각이 많은 날 인가 보다.

내가 택시비를 내고 내리고, 나중에 뒤에 앉았던 여자에게서 택시비의 반은 받았지만

이런 줄 알았으면 그냥 각각 탄 거라고 얘기 할걸 하며

이 나이 먹은 기사 아저씨가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같이 늙어가는 사랑하는 안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 갖다 주었으면 좋았을걸 하며 잠깐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이 잠깐 동안 생겼던 조그만 일로 인해

나의 머리 속에 이 장면이 한편의 영화로 각색 되어 

그대로 나의 생활이 그들 생활 위에 오버랩 된다. 


내가 이제부터 기사분의 안사람처럼 산다면?


그냥 이대로 살지 뭐.....

참, 사람의 마음이란.....

 
by 외할머니 | 2008/02/23 18:29 | 트랙백 | 덧글(3)
속 깊은 즐거움
속 깊은 즐거움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잔 들고 소파에 앉아 있노라면

아침 햇살이 유리창 넘어 길게 거실에 드리운다.

따듯한 햇살이 거실 마루에서,

유리창에 있는 격자 무늬를 담은 채 나의 발을 간질인다.

마루 바닥에는 밖에 데크 난간 위에 올려 놓은 새집의 그림자도 함께 들어온다..

거기 검은 새집 그림자에 검은 새들의 그림자의 움직임이 바쁘게 그려진다.

공기의 소리도 들릴 것 같은 조용한 이 곳에

거실 바닥은

온통 각각 하나씩 집을 차지하든가,

혹은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는 새 들의 움직임이

나의 마루에 그려지는 한 폭의 아름다운 움직이는 설치 미술이다.


무엇이든 짚고 일어서기 시작 하는 아기를 책장 앞에 세워주었다. 

아기가 무심코 끌어 내린 책을 본다. 

누리끼리 한 것을 보니 오래된 책인 것 같은데 황 순원씨의 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아기는 왼 손으로 붙잡고 오른 손은 그 책을 열심히 들춘다. 

황 순원씨가 65년도에 쓴 단편들이 누런 종이에 세로 쓰기가 되어있다. 

한 군데를 펼치고 읽어 내려간다. 

아기는 제 엄마에게 보내고

내가 왕년에 좋아했던 작가여서인지 펼친 단편 한편을 읽어 내려 가는데

거기에 그만 빠져 버린다. 

기르던 거위 암놈이 병들어 죽자 숫 놈은 그 이후 물 한 방울 먹지 않고 버티다가

얼마 후 따라 죽었다는 얘기도 나오고,

주인공이 어느 강을 건너기 위해 뱃사공 있는 곳에 왔으나

다른 손님이 더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사공의 말을 듣고

모래 사장 그늘에 앉아 무심코 사공의 짓거리를 보고 있다. 

사공은 그의 옆에 큰 솥을 올려 물을 덥히고

어디서 잡았는지 해오라기 한 마리의 털을 뜯고 있었다. 

푸른 하늘 윗 쪽에는 숫 놈 해오라기 한 마리가 빙빙 돌고 있었단다.

드디어 털을 다 뜯은 사공이 그 해오라기를 끓는 물에 넣자

머리 위에서 빙빙 돌던 숫놈 해오라기가

갑자기 암놈을 따라 그 끓는 물 속으로 뛰어 든다.

 

지겨운 구정 연휴를 보내고 어느 마트에 들어가 혼자 빙빙 가게들을 둘러본다.

어느 조잡한 장난감 가게.

각종 아이들의 로봇들과 조잡한 자동차 모형들이 쌓여있다. 

그 앞을 지나니 새 소리가 난다. 

다시 되돌아 와 그 가게 앞을 지나자 또 새 소리가 삐빅 하고 난다.

가만히 보니 로봇 상자 위에 조그만 노란 새 모형이 있고

그 새가 센서를 달았는지 그 앞에 서면 소리가 나고 비켜서면 소리가 안 난다.

어찌나 새를 예쁘게 만들었는지 그 앞을 떠날 수가 없다.

할머니 하나가 장난감 가게 앞에서 혼자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우스웠는지

가게 주인이 나온다.  그리곤 설명하려 든다.

알아요 알아요.  또 머리 속은 시끄럽다. 사? 말어?

새를 주제로 만든 물건들이 나의 방 장 속에 쌓여 있다.

나를 아는 친구들이 혹은 내가, 모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울릉도 여행 때 일이다.

한참 숲 속 길을 가고 있을 때 

갑자기 나의 바로 옆에서 푸드득 하고 무엇인가 날아 오른다.

조용한 숲 속 길에서 갑자기 만난, 푸드득 소리에 나는 그만 혼비백산 뒤로 물러났다.

아름답고 긴 꼬리를 가진 '꿩'이다.
우리가 말하는 바로 멍충이 이었다.

도망가려면 우리가 바로 옆에 오기 전에 벌써 도망 갔어야 하지 않나?

무엇을 먹느라고 우리가 옆에 오는 것도 몰랐을까?
그러니까 포수들의 겨냥이 되지!

또 숨는다는 것이 자기 머리만 쳐 박고 궁둥이는 다 내 놓고 숨는 것이 이이 아닌가?

 

이렇게 저렇게 나의 주위에서 만나는 새들에 대해서

나는 언제부터 그렇게 애정 어린 눈으로 보게 되었을까?

새가 있는 수를 놓고, 새 그림을 그리고…….

여기 10년 전에 들어 와서 살기 전까지는

그냥 새라는 것은

공중 나는 새

그림책 속의 새

등산 길, 숲 속에서 만나는 실체 없는 소리만 들리는 새가 아니었던가.

 

항상 아침이면 찾아 오는,  산새들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바라 볼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지.

큰 오색 딱띠구리의 배와 머리에 그렇게 아름다운 붉은 색이 찍혀 있을 줄이야.

진 박새의 머리가 멋 부린 하이칼라 남자처럼

머리 가운데를 무쓰로 살짝 올려 빗고 뽐내고 있을 줄이야.

노랑 할미새가 긴 꼬리를 그렇게 위아래로

장단 맞추듯이 마구 흔들고 있을 줄이야.

머리에 하얀 가름마를 탄 곤줄박이가

암놈 숫놈 같이 어린 새끼에게 먹이를 그렇게 열심히 물어 다 줄 줄이야.

그리고 우리가 주는 먹이를 그렇게 맛있게 먹을 줄이야.

 

인간을 사랑하건

새 같은 조그만 것들을 사랑하건

사랑하는 것에는 항상 속 깊은 즐거움이 있다.

 

by 외할머니 | 2008/02/12 19:15 | 트랙백 | 덧글(1)
지하철 단상

지하철 단상(斷想)

 

내가 시골에서 서울에 올라와서 시간을 내어서 자주 찾아 가는 곳은 동대문 종합시장이다.

내가 팔레트에 짜 놓은 여러 색깔의 물감처럼 펼쳐 놓고 뽑아 쓰는
그 많은 수실이 있는데도 자주 종합시장을 드나드는 것은
시골에서 틈틈이 조그맣게 수 놓고 있는 그림에

내가 내려고 하는 색의 수실이 항상 없기 때문이다. 

심사 숙고 해서 사가지고 왔는데도 그 실로 수를 놓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그 색갈이 나오지 않는다.

유화처럼 여러 색을 섞어서 그 색깔을 만들 수도 없으니

딱 맞는 색의 수실을 찾아서 서울 올 때마다 시장을 헤맬 수 밖에...

 

그래서 자주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 역에서 내린다.

지하철에서 내려 종합시장 쪽으로 층계를 올라 가다 보면

항상 그 자리 층계참에 더덕 껍질을 벗기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다.

더덕 냄새로 온통 지하철역을 진동하게 하고 있는

그 더덕 파는 아주머니 앞을 이제는 그냥 지나친다. 

일년 전인가

처음 지하철역을 꽉 채우고 있는 이 더덕냄새를 맡았을 때

이 정도로 더덕냄새가 나는 더덕이면 진짜 산 더덕에 틀림없어 하며

산 더덕이라고 굳이 우기는 아주머니들이 파는 더덕 한 무더기를 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집에 와서 보니 그 더덕은 냄새도 별로 나지 않는 양식 더덕이었다. 

나중에 어떤 이에게서 들은 말로는 그것도 상술로

진짜 자연산 더덕 한 두 뿌리로 냄새를 온통 풍기게 하고,

실제로 파는 것은 가짜 더덕 즉 양식더덕이라는 것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절대, 아주머니가 아무리 불쌍해 보여도,

그 어떤 지하철역에서 더덕 냄새가 내 코를 무한정 건드려도

아무리 진짜 산 더덕이라고 우겨도 나는 절대 지하철 더덕을 사지 않는다.

 

조금 더 층계를 올라가 거진 입구 쪽에 다다르면

그 곳에는 항상 나이가 꽤 든 백지장같이 하얀 얼굴을 가진 할아버지 한 분이

동전 한 두 푼이 담아 있는 조그만 양재기를 앞에 놓고 쪼그리고 앉아 있다. 

몇 번 오가며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아챘지만 직업적인, 돈이 모아지면

깡패들이 갈취 해 가는 그런 류가 아닐까 하며 그냥 슬쩍 한번 쳐다보며 지나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히 쳐다보고 지나는 순간 우연히

그 할아버지의 하염없이 멀뚱히 쳐다보는 눈과 나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나는 얼른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 나왔지만 그 눈이 어찌나 마음에 걸리던지……. 

아무리 직업적인 구걸이고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혹시 누군가가 있다 하더라도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을 가진 할아버지는 저렇게 나와서 구걸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정말 불쌍한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어떤 사연이 이 곱게 늙은 할아버지를 거리에 내 몰았을까?

너무 말라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한줌도 안돼 보였지만

그러나 입고 있는 잠바는 구걸하는 사람답지 않게 깨끗해 보인다.

비록 행색은 깔끔하지만 깊이 병이 든 것 같이 얼굴 색이 하얀 조그만 할아버지다.

그 곳을 지나 갈 때 꼭 그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바닥만 쳐다보며

쪼그리고 앉아 있는 그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모시고 가서 따듯한 국밥이라도 한 그릇 사드리고 싶은

동정을 유발시키는 그런 모습이었지만 무엇이 나를 망설이게 하는지

나는 그저 국밥 한 그릇 정도의 돈을 조그만 양재기에 넣어 드리고 오곤 했을 뿐이다. 

양재기에 돈을 놓자마자 하염없이 쪼그리고 앉아 있던 할아버지의 손이 재빠르게 나와

그 돈을 바지 주머니에 쓸어 넣는다.

동전이 아닌 지폐인데도 나를 쳐다 보지도 않고 재빠른 손 놀림으로

주머니에 돈을 넣는 것을 본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무엇인가 묘한 마음이 들어 내 머리 속은 또 다른 한편으로 내닫기 시작 한다. 

그 사람의 멀뚱히 쳐다본 그 눈에 내가 혹시 조종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 눈빛을 무기로 하여 지나 가는 사람들의 마음마다

그냥 지나치면 갖게 되는 죄책감이란 것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다시 나는 머리를 흔들며 그 하얀 할아버지의 눈에는 그런 연기를 하는 모습은 없었어 하며

순수하게 도와드리지 못하는 나의 머리 굴림에 나를 또 한번 나무란다.

이렇게 얼마 안 되는 돈을 드리고도 이 돈이 할아버지에게 가는 것인지,

혹은 깡패의 주머니를 부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양분된 머리 속이 복잡해 진다.

언뜻 작년인가 재 작년인가 크리스마스 이브 때의 일이 슬며시 떠올랐다.

 

올해에도 여전히 남편과 둘이 맞게 될 크리스마스를,

둘이서 오래간만에 이 크리스마스 이브를 빌려서 케이크라도 먹어보자 하고

아주 조그만, 두 주먹을 모아놓은 크기의 케이크를 하나 사서 들고

그 케이크를 보며 재미있어 할 남편을 생각하며

서울의 나의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지하철 층계를 오르고 있었다.

그 층계를 다 올라와서 나오면 지하철에서 나오는 손님들에게 팔기 위해

한 사방 일 미터의 비닐 좌판을 바닥에 깔고 거기서 도라지, 고사리, 우엉 채,

다듬은 쪽파, 시금치 등을 파는 조그만 체구의 아주머니가 있다. 

가끔 그 아주머니한테서 물건을 사 주어 얼굴은 알고 지내는 사이다.

조그만 아주머니는 날이 춥지 않아서인지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인데도
장판을 벌려 놓았지만 아직 팔지 못해 많이 남아 있는 채소들을 앞에 놓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그런 야채를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그 아주머니를 보니 갑자기 내가 들고 있는 케이크상자가 부끄러워졌다.

상자를 뒤로 얼른 감추었다.

아주머니 아직 물건이 많이 남았네요.

오늘은 잘 안 팔려요 하고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는다.

아주머니 이거 좀 작긴 하지만 집에 가서 아이들하고 잡수세요

내가 내미는 케이크 상자를 받아 들고 눈이 화들짝 커진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나는 왜 진작 식구가 많을 것 같은 이 아주머니를 미처 생각 못하고

남편과 나의 입만 생각하고 그렇게 조그만 케이크를 샀을까 하고 후회에 후회를 거듭했다. 

케이크가 너무 작아서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주고도 미안 했다.

그 날 집에 와서 남편에게는 케이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않고 조용히 이브를 보냈지만

그래도 나의 마음은 달콤한 케이크 한입 먹은 것보다 왜 그리 기쁘고 행복 했었는지……

엄마가 아이들과 둘러 앉아 엄마가 가져온 조그만 케이크를 함께 먹고 있는 모습이

내 머리 속에 아름답게 그려졌다.

 

이번에 할아버지에게의 마음도 이렇게 머리 굴림 없이
순수하게 갖게 되었던 작은 기쁨이었으면 좋았으련만
.
그 할아버지에 대한 이중적인 마음은 나의 모자람이었던지 아니면

세태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지금도 그 하얀 할아버지는 그런 자세로 그 곳에 앉아 있을까?

오늘 유난히 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by 외할머니 | 2007/10/06 14:35 | 트랙백 | 덧글(0)
책가도 (冊架圖 )

 

                               이 사진은 봉평에 있는 십 년 전에 그리신 엄마의 책가도



팔월 어느 날, 아침 여덟 시, 봉평에서 고속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 했다.

요즈음은 서울 갈 때 차를 직접 운전 하고 가는 것 보다는

버스 타고 가는 것이 한결 더 즐겁고 편안하다.

나이가 들어서 인지 이제는 장거리 운전 하는 것이 점점 싫어진다.

동 서울 터미날에서 내려 곧 바로 광나루 역, 5호선 지하철을 타고

종로 3가에서 내려 엄마가 가르쳐 준 대로

안국동 조계사 맞은 편에 있는 송지방(宋之房)까지 걸었다. 

송지방은 엄마가 늘 그림 그리는 종이를 사는 곳이다.

엄마가 부탁 한 삼합(두께를 말함)되는 한지 네 장을 사서 둘둘 마니

지름 20센치의 종이 두루마리의 높이가 일 미터 오십 센치 나 되었다.

커다란 종이 두루마리를 옆구리에 끼고

거기서부터 김포 가는 버스가 있는 광화문까지 종로 통을 걸었다.

아침 일찍 봉평서 떠났지만 그 종로 통을 걷고 있는 시각은 12시 한 낮.

햇빛은 바로 머리 위에서 작열 하고

옆구리에 끼고 가는 키 만한 종이 두루마리는 자꾸 흘러 내리고,

엄마가 잡숫고 싶으시다고 해서 사서 넣은 장어 보따리는,

더운 여름에 상할까봐 얼음을 사서 넣어서인지 왜 그리 무거운지……

이렇게 들고 가기 어려운 종이 다발을 엄마는 매번 필요 할 때마다

꼭 이곳에 와서 똑 같은 코스로 다니시며 사서 쓰신다니

나는 겨우 한번 하면서 투덜대는 것이 조금 민망스러웠다.

땀은 나지요, 가방은 무겁지요, 길은 멀지요, 하며

봉평서 서울 오는 시간보다 서울서 김포 가는 시간이 훨씬 더 걸려
겨우 버스에서 내리니
엄마가 버스 정거장에 나와 계신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

도란 도란 이야기 하며 엄마 집에 도착 해 보니

엄마가 준비 해 놓은 냉면을 말아 주시는 데 어찌나 시원하고 감칠 맛 나는지……

아삭아삭 하게 씹히는 노각을 넣은 깔끔한 냉면이 배고픔과 더위를 말끔히 씻어 준다.

 

더위가 가시자 엄마와 나는 곧 그 큰 종이를 펼쳐 놓고

내가 부탁 한 책가도 민화를 종이 밑에 먹지를 대고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 했다.

 

우리 봉평 집을 찾아 주시는 분들에게 내가 꼭 자랑하는 것이 하나 있다.

한 십 년 전에 엄마가 나에게 그려 주신 그림을 두 쪽짜리 큰 병풍으로 꾸몄는데

문방도, 책거리 그림이라고도 하는 책가도(冊架圖)다.  

책가도란 옛날에 선비들이 아들의 방을 꾸며주거나

선비들의 서재를 꾸미기 위해서 화가들에게 주문 했던 그림으로

책 더미와 여러 가지 일상용품을 적절히 배치한 정물화풍의 그림이다.

서가 모양의 격자 구획 안에 책 더미 이외에 향로, 필통, 붓, 먹, 연적, 도장등과

선비의 격조에 맞는 도자기, 화병, 화분, 부채도 그려 넣고

선비의 여가 생활과 관련 된 술병, 담뱃대, 악기, 안경 등도 그려 넣은 것이다.

.

그 그림을 본 사람들은 다들 깜짝 놀라며

그 그림을 가지고 있는 나와

그런 엄마를 가지고 있는 나를 그렇게 부러워한다.

 

아흔이 다 되신 나이에 힘든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것이 안쓰러우면서도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가 가장 즐겁다고 하시는 엄마에게  

이번에 책장 여덟 개짜리를 그린 네 쪽 병풍의 책 가도를 부탁 한 것이

내 욕심은 감추어 두고 엄마의 즐거움을 더해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혼자 변명 해 본다.

그런데도 엄마는 이 힘든 부탁을 금방 들어 주셨다.

오히려 엄마는 책과 책장 그림이라서 선(線)이 많은데 요새는 힘이 없어서인지

손이 떨려 선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걱정을 하신다.

언젠가 친구 집에서 본 일본 방송에서 베르메르가 그린 화가의 자화상에

이젤 앞에 긴 막대기가 세로로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 막대기의 쓰임새가 무엇인지 퀴즈를 내는 것을 본 기억이 났다.

그 답은 바로 선을 그릴 때 손의 떨림을 막기 위해서

손을 그 막대기에 대고 그리기 위한 것이었다.

엄마에게 그렇게 한번 해 보라고 감히 말씀 드렸다.

 

저녁에는 가지고 간 장어와 장어 소스로 맛있는 장어 구이 덮밥을 해 드렸다.

오늘은 친정에서 자고 가겠다고 하는 내 말에 엄마는 너무 좋아하셨다.

엄마 곁에 와 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시는 것을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이렇게 가끔 밖에 곁에 있어드리지 못하는 것일까?

누어 계시는 시어머님에게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가면서

친정엄마에게는 자주 못 가 뵙는 것은

친정엄마가 딸이 항상 보고 싶지만

친정까지 먼 길을 오는 것이 안 돼 보이고 힘 들까봐 배려 하시는 그런 마음을

내가 고지 곳대로 받아 들여서 일 것이다.

 

이 날 나는 옆에서 도와드리면서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지 몸으로 느꼈지만

나이 먹어 잠도 없어졌다는 핑계를 대시며 새벽 두 세시까지 앉아 그림을 그리시는 것이

그림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과연 가능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또 한편 잠깐 졸다가 눈을 반쯤 뜨고 본 엄마의 그림 그리는 모습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내 머리 속에 깊이 새겨 져 자리 잡고 있다..

아침에 일어 나 보니 이미 반 이상의 밑그림을 마친 엄마에게

천천히 하시라고 여러 번 말씀 드렸다.

 

엄마 옆에만 가면은 낮에도 왜 그렇게 잠이 오는지

이번에도, 덮어주는 이불을 옛날처럼 차 내 버리면서 깊이 단잠을 잤다.

엄마 옆이면 나이가 육십이 넘어도 아무 걱정 없이 이렇게 편안 한가 보다.

 

어두워 지기 전에 가서 이서방한테 밥을 해 주라며 떠미는 엄마를 뒤로 하고

오후 세시쯤 엄마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서울 집에 오니 저녁 다섯 시.

다시 동서울에서 장평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터미날에 도착하니 저녁 여덟 시.

장평 터미날에는 남편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오늘 긴 여정의 길이였지만

엄마를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 드렸다는 마음에 피곤 한 줄도 몰랐다.

 

오늘 그림 한 쪽 끝냈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그려서인지

색깔도 내가 마음 먹은 대로 잘 나오고 전체적으로 그림이 아주 잘 돼.

하시며 오늘 아침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by 오기 | 2007/09/01 21:59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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